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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나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19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말을 하는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은 비웃음이나 조롱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사려 깊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때도 물질이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못했다. 아무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원자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없는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고 여기던 사람들도 많았다. 도저히 원자가설을 믿을 수 없다는 이 단정적인 주장은 실제로 1897년 1월 빈에서 개최되었던 왕립 과학원 학술회의에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런 발언을 했던 사람은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였다. 오랫동안 프라하 대학의 물리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당시에는 빈 대학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수였던 그가 50대 후반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이론 물리학자인 루트비히 볼츠만의 강연이 끝난 후 이어졌던 토론시간 중에 그런 강경한 발언을 했다. 마흐보다 조금 더 젊었던 볼츠만도 역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재직하다가 빈 대학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볼츠만은 원자 가설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사실 그가 평생 동안 연구했던 내용은 모두 원자 가설과 관련한 것이었다. 오늘날 원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그런 원자가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원자는 밀도가 큰 원자핵과 그 주변에 구름처럼 퍼져있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은 다시 쿼크로 이루어진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쿼크도 진정한 기본 입자가 아니라 더 기본적인 이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자연의 기본 법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론 물리학자들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난해한 개념이나 대상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신기하기는커녕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과학자들은 공기 중에서 전달되는 음파, 가열에 의해서 일어나는 기체의 팽창, 증기기관에서 열이 동력으로 변환되는 과정처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측정해서 명백하게 만드는 것만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임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과학 법칙이란 직접 관찰된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깊은 수준의 이해를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그치지 말고 더 깊은 곳을 파헤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과학자도 있었다. 루트비히 볼츠만은 그런 선구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기체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원자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면 기체의 여러 가지 성질들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먼저 인식했다. 원자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온도와 압력이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런 사실로부터 기체를 가열하면 팽창하게 되는 것을 단순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서 왜 기체가 팽창하고 얼마나 팽창하게 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원자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증기기관에서 뜨거운 기체가 피스톤을 밀어내면서 기계적인 일을 만들어내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다. 볼츠만은 평생을 바쳐서 새로운 원자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당시 물리학에서는 전혀 새로운 이론적인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원자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고, 그 움직임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원자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통계와 확률의 방법을 이용해야만 했다. 볼츠만은 그런 방법을 이용해서 근본적으로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원자들이 집단적으로 나타내는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자들 하나하나는 무질서하게 움직이더라도 집단적으로는 질서 있는 거동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그는 확률을 이용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물리법칙을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볼츠만의 그런 주장은 과학법칙이 절대적인 확실성과 예외가 없는 규칙을 근거로 해야만 한다고 교육받았던 물리학자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19세기 유럽의 모든 과학자들이 그런 새로운 주장을 환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볼츠만은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그가 추구하던 것이 과학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팽창하는 기체의 온도, 압력, 부피를 측정해서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단한 법칙을 찾아내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볼츠만이 주장하는 원자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실험을 통해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명백한 법칙들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가상적인 입자를 이용해서 설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에른스트 마흐가 원자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믿음이라는 말은 과학 논쟁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은 논증과 이성, 논리와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는가? 원자는 분명히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아야만 한다. 그런 논쟁에서 믿음이 왜 필요할까? 그런데도 마흐는 분명히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실제로 그 자신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적인 확실성이 확립되기까지는 무한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런 확실성은 절대로 확인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자는 명백하게 증명할 수도 없는 새로운 개념과 잠정적인 이론을 제기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단순한 짐작을 멋있게 표현하는 가설을 만들어서 자신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시험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학적 가설들 중에서 단순 명료하게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용하거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가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가치가 있는 가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수없이 많은 시험을 거쳐야만 한다. 무지와의 싸움은 엄청난 소모전이니까. 그래서 과학자는 새로운 주장이 인정될 때까지 신념을 갖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과학자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들이 선택한 가설을 추구하게 된다. 볼츠만은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 가설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었다. 볼츠만은 단 하나의 가설로부터 기체의 다양한 성질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새롭고 유용한 이해의 방법을 찾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볼츠만의 예리한 통찰력과 이론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이론을 제기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이론을 믿는 대신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철학을 만들어냈다. 과학은 직접 측정할 수 있는 것에만 한정되어야 하고, 이론은 그렇게 측정된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가 믿었던 철학이었다. 기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면 가열 되고 부피가 늘어난다. 그런 변화에 대한 법칙은 이미 몇 년 전에 밝혀졌고, 또 명백하게 확인되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볼츠만과 마흐의 논쟁은 원자론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의 목적과 물리학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이해와 설명의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 마흐는 명백하게 측정된 양들 사이의 관계를 밝혀주는 간단한 식만 찾아내면 된다고 믿었고, 볼츠만은 더 깊은 가정이나 가설을 이용하면 물리세계에 대한 더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볼츠만은 이론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세계가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본 것이었다. 믿음과 마찬가지로 “가치”라는 것도 과학과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왔던 마흐도 결국 가치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과학적 설명의 가치는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어떤 종류의 설명을 추구해야만 하는가? 마흐가 빈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과학에서보다 철학에서의 업적으로 더 유명했다(그는 다양하고 유용한 업적을 많이 남기기는 했지만, 정말 훌륭한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발사체가 날아가는 속도를 음속의 배수로 표현하는 마하수 때문이다. 마하수는 편리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천재의 업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볼츠만은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듯이 철학적인 논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힘을 얻고 더욱 넓은 범위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는 사실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사실을 더 잘 이해한다는 말 자체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볼츠만은 1897년 빈 과학원 학술회의에서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마흐의 단정적인 주장이 “한동안 머리 속에 맴돌았다”고 회고했다.2 마흐의 반대는 그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특히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론 물리학자였던 그는 마흐의 고집스러운 반대에 대해서 마흐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성격의 논리로 대응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어쩔 수 없이 철학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만 했다. 그것은 불행한 충동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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