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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그렇듯 나에게도 마리 퀴리는 '교과서의 위인' 이었다. 핍박 받는 폴란드 민족이었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끈기와 열정으로 새로운 진리를 획득해 낸 과학자의 전형이었다. 일간지 과학 담당 기자인 나는 고난을 헤쳐 성과를 내는 우상을 만드는 일에 전혀 낯설지 않다. 퀴리는 그러한 과학적 우상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바바라 골드스미스의 퀴리 전기는 우상의 겉껍데기를 벗겨 내고 인간으로서의 마리 퀴리를 보여 준다. 마리 퀴리는 여성으로서 첫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몇 안 되는 2회 수상자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녀를 우상화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퀴리 부부가 라듐을 발견한 직후 유럽을 휩쓸었던 라듐의 열풍은 지금의 최신 전자제품이나 웰빙 열풍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여서 그들의 유명세는 대단했다. 또한 확실히 그녀는 머리가 비상하고, 주의집중력이 대단했다. 8년간의 가정교사 생활 끝에 어렵사리 파리로 유학을 간 집념어린 여성이었다. 남편 피에르 퀴리가 사망한 뒤 그는 소르본대학교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됐고, 말년에는 미국에서 퀴리 연구비 모금운동을 벌여 미국 여성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생토록 얼마나 뿌리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는지, 두 딸이 얼마나 자기 어머니에 대해 거리감을 갖고 있었는지, 또한 부족한 연구비를 조달하기 위해 언론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우리가 채 알지 못하는 퀴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골드스미스가 생생히 포착해 낸 모습이다. 저자는 1900년 무렵의 유럽사회와 과학자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위치를 떠올리며 퀴리의 삶을 다각도로 이해하게끔 만든다. 마리 퀴리는 첫 노벨상을 받지 못할 뻔했고,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얻는 데에는 끝내 실패해 노벨상을 2번이나 받고도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논문을 강독하지 못했다. 또한 남편 사후 유부남이었던 남편의 제자, 폴 랑주뱅과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에도 언론의 혹독한 비난을 한 몸에 받은 것은 오직 마리 퀴리 뿐이었다. 그녀의 우울증과 완고함은 혹독한 현실에 대한 대처방식이자 과학자로서의 장점이 되었다. 역경이 닥칠 때마다 그녀는 감정을 억누른 채 그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정밀한 실험에 몰두해 반박할 수 없는 실험데이터를 들이밀었다. 4년여에 걸쳐 결국 깨알만 한 라듐 염을 분리함으로써 방사능의 실체를 최초로 드러내 보인 고집은 마리 퀴리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골드스미스의 책에서 생생한 인물로 되살아 난 또 다른 인물은 남편 피에르 퀴리다. 당시 퀴리 부인의 업적을 습관적으로 피에르 퀴리에게 돌렸던 것 만큼이나 지금 많은 이들은 피에르 퀴리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실제로 그들 부부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 환상의 콤비였다. 피에르는 민감하고 까다로운 실험장비를 만드는 데 천부적이었고, 마리는 참을성과 손재주로 유용한 실험데이터를 얻어내는 실험의 대가였다. 라듐 염을 분리해 낸 데에는 마리의 인내가 결정적이었지만 원석을 얻어 내기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와 독지가를 설득해 낸 것은 피에르의 현명함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그리고 오늘날 어딘가에도 또 다른 마리 퀴리는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어느 지적이고 야심찬 여성이 그러했을 것이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허무는 과학자들이 그러할 것이다. 마리 퀴리가 그러했듯이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과 집념으로 충만한 그들 말이다. 2009년 1월 역자 김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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