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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루빅스 큐브를 들고 나왔다. 큐브를 요리조리 돌리며 맞추는 모습을 보니 한때 거기 푹 빠져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반가웠다. 2차원의 그림 맞추기 퍼즐을 3차원으로 옮겨놓은 이 퍼즐은 마지막 줄을 맞추려 하다 보면 이미 맞춰둔 부분이 흐트러지는 등 인생살이와 닮은 데도 많다. 워낙 뭔가를 맞추고 찾아내는 종류의 퍼즐을 좋아하다 보니, 큐브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금방 매료되고 말았다. 친구가 학교로 가져온 큐브를 빼앗다시피 낚아채 맞춰보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줄을 맞추기가 영 쉽지 않았다. 여기를 맞추면 저기가 비뚤어지고, 저기를 맞추면 다시 다른 모퉁이에서 엉뚱한 녀석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퍼즐이란 푸는 게 재미이고 또 너무 풀기가 어려우면 재미가 덜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어렵지는 않으리라 생각했고, 조금만 더 생각하면 풀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몇 시간을 씨름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친구는 그 정도야 간단하지 하며 금방 대답해 주었다. “이렇게 됐을 때는 말이야, 이걸 일단 이렇게 돌린 다음 이걸 이쪽으로 돌리는 거야.”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친구가 정말 영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그 방법을 어떻게 알아낸 걸까? 큐브를 맞춰내려면 하나를 움직일 때 전체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게다가 한번에 맞추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간 단계를 여럿 거쳐야 한다. 기하학 문제를 풀 때 보조선을 긋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기하 문제를 풀 때에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 놓고 직접 보조선을 그어가며 풀어나가지만, 큐브는 그럴 수 없으니 중간 단계까지 머릿속으로 그려야 한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풀어내려면 집중력과 상상력, 암산 능력 등 대단한 공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싱겁게도 친구의 비밀은 ‘공식’에 있었다. 큐브를 살 때 끼워준 설명서에 자세히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식이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 맞추는 법을 찾아내 체계화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그만한 공력을 지닌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공식을 만들어 놓으니, ‘수재’라 말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우리 같은 사람도 꼼꼼히 공식을 따라 갈 정도의 성의만 있으면 간단히 퍼즐을 풀어낼 수 있다. 한 사람이 찾아낸 난해한 지식이 이렇게 모든 사람의 평범한 지식이 되는 것이다. (루빅스 큐브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큐브를 발명한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해법을 찾아낸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다. 최근 해결됐다는 ‘푸앵카레 추측’ 문제 역시 마찬가지 경우인 것 같다. 문제를 찾아낸 사람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풀어낸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이 문제와 해법에는 앞으로도 그리고리 페렐만이라는 이름보다는 ‘푸앵카레’라는 이름이 계속 붙어 다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런 규칙을 찾아내는 일이 적성이 맞는 것 같다. 저자는 이론 물리학의 쾌거를 이루어 제2의 아인슈타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물리학 세계에 뛰어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간에 쫓기면서 뉴턴과 아인슈타인 수준으로부터 파인만으로, 파인만에서 다시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에는 같은 연구실의 동료가 세미나에 초대됐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는 수준으로 눈높이가 낮아지는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는 물리학을 완전히 그만두고, “인생과 일에 대해 품고 있던 환상이 세상이라는 거친 사포에 아프게 쓸리며 서서히 벗겨져나가는” 과정을 거친 다음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서 ‘금융공학’을 하게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 ‘순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 현상 이면의 원리를 찾는 일을 계속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이론 물리학과 금융공학의 공통점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로 돌아가, 원리를 찾아낼 필요가 있는 현상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방법을 제자에게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물리학 전공자가 퀀트로 전향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흔히 ‘상아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학문 세계로부터, 모든 것을 돈과 연관시키는 투자은행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고도 인간적으로,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독특한 유머로 그린 책이다. 물리학 세계, 컴퓨터 프로그래밍, 거대 기업의 관료주의, 금융 분석사 생활 등 내부자의 눈으로 깊이 바라본 여러 세계,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과 ‘제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편, 책 앞부분에서는 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을 많이 보게 된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역사적 사건, 그의 이론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입자가속기, 냉전 체제의 무기 경쟁에 따른 풍족한 기초 연구 자금 지원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물려 일어난 현상이겠지만, 짧은 기간에 소수의 기관에서 그렇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마도 이들이 연구한 환경이 ‘뜨거운 물’ 속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얼음물에 장작을 때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원래부터 뜨거운 물이 끓기까지 에너지가 덜 드는 법이다. 본격적 연구를 원하는 사람들이 유명한 학교나 기관을 찾는 것 역시 뜨거운 물속에서 지내려는 마음에서일 게다. 저자가 몸담고 있던 물리학과 역시 그런 의미에서 뜨거운 물속이었고, 그가 나중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룩한 투자은행 역시 뜨거운 물속이었다. 이런 것을 볼 때, 한 방면의 최고 실력자가 되려면 능력과 운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물이 가장 뜨거운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내는 안목 또한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우리 스스로 그처럼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며 후학을 키우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2007년 6월, 옮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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